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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덕궁 후원의 설경<전편>
    일상 2017. 2. 20. 11:00

    60년대에는 '창덕궁'의 '비원(秘園)'으로 불렀던 곳.

    그러나 지금은 '후원(後園)'이라고 불러줘야하는 곳.

    6.25사변 직후 50~60년대에 군인(주로 미군)들이 찝차와 군화발로 들락거려서 많은 곳이 훼손되고 부셔진  곳이 많았는데,

    이제는 허락받아 예약한 뒤에,비교적 고가..즉 입장료보다 비싼 관람료를 다시 지불해야 들어걸 수 있는 곳으로 변모되었지만

    이 모든 국가의 흥망과 쇄락을 겪으며 세대의 고락을 같이 겪어온 조선시대 최고의 정원입니다.

    눈이 그치고 며칠 뒤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얼음이 얼어서 미끄러운 관계로 '옥류천(玉流川)은 출입이 제한되어 아쉬움이 남더군요.



    '의두합(倚斗閤 )' 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의 공부방이며, 북향으로 지어진 건물로서 현판에는 '기오헌(奇傲軒)'으로 적혀있습니다.

    즉 '기오헌'이라는 명칭은  '의두합'의 누마루에 붙인 이름입니다.

    출처는 '도연명' 의 '귀거래사(歸去來辭)'내용 중 한 구절이랍니다. 구절을 인용하면 '남창에 기대어 마음을 다잡아보니 좁은 방안 일망정

    편안함을 알았노라 (倚南窓以寄傲 審容膽之易安)....라고 합니다.

    건물의 상량문에는 '수만권의 책을 쌓아두고 공부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글이 적혀있다고 설명하네요..

    우측의 작은 한칸 반짜리 건물은 '운경거(韻警居)'이며, 공부하는 책을 보관하는 책고(冊庫)로 쓰였던 것 같다고 하지만,

    그런데 '운경거'라는 이름은 '시(詩)와 음률이 있는 집'이란 뜻으로 풀이되는 것을 보면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효명세자'가 악기와 

    무용도구를 보관했을 것이란 정설도 나옵니다.

    뒷편에는 산으로 둘러쌓여서 궁중내의 잡다한 모든 소음도 모두 가라앉아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조성될 것 같습니다.



     


    '승재정(勝在亭)'은 반도지(半島池) 한 켠 언덕 위에 다소곳이 자리한 정격의 격식을 갖춘 정자입니다.

    사방의 네기둥을 모두 둥근목재로 사용했으며 (궁궐에서 사각기둥의 건물은 한단계정도 품격이 낮은 건물입니다.)

    네면의 창호문은 모두 위로 걸 수 있게 지어졌으며,정교한 조각을 새긴 난간이 사방으로 설치된 모습입니다.



     


    연못의 물이 모두 꽁꽁 얼어서 눈이 가득히 덮힌 '부용지(芙蓉池)'는 늦은 겨울만의 웅크린자태로 한껏 고고해집니다.

    한쪽에 다소곳이 자리한 '부용정(芙蓉亭)'은 겨울의 추위에도 아름다움만은 변하지않는 것 같네요.

    마침 오후시간대에 입장한 덕분에? 서쪽으로 지는 햇살의 모습도 함께 담을 수 있었습니다.

     

     

    *** 그런데 따로 허가받아 가까이 들러본 '부용정'의 관리는 조금 실망스런 부분도 있습니다.

    요즘의 철제난간에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부용정'의 덜렁덜렁거리며 간신히 제자리를 지키는 나무난간은

    비싼 요금과 어려운 예약에 비해서 수리및 관리체제에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고 느껴집니다.

     

     

    새삼스레 제가 티스토리에 가입활동하던 날을 되살려 생각해보니 2006년 12월 17일이었으니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 11년째에 들어섰습니다.

    그동안 사회에서 많은 인맥과 인덕을 쌓거나 업적은 말할 것도 없고 ... 오히려 소중한 것들 만을 많이,정말 많이도 빼앗기고 또 잃어버렸다는 것만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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